서울대학교어린이병원 소식지 2024 Vol.11

4. 류가연 내 아기 가연에게 눈이 내리는 하늘을 보면 가연이가 웃는 것 같아 계속해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어. 비가 오는 창밖은 가연이가 잠을 자는 소리 같아서 한참을 앉아 듣고 있어. 해가 뜨고 구름이 지고 비가 오고 눈이 와도 별과 달이 빛나도 가연이가 없으면 나의 시간은 멈추고 하늘은 무너지고 나의 지반은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어. 너는 나의 전부였으니까. 그런데 참 신기하지? 모든 시간이 아플 거라고 생각했어. 아픈 너의 모습이 떠올라 매일매일 후회하고 지낼 거라 상상했어. 가연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해서 화가가 되기도 하고 피아니스트가 되기도 하고 우주비행사가 되어 웃으며 이야기하던 그 시간들이 가연이를 위한 시간보다는 엄마를 위로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 긴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힘들 땐 손잡고 놓아주지 않을 땐 얼마나 큰 위로가 되든지. 어쩌면 미숙한 엄마를 가연이가 인내하며 보살펴 준 것 같아. 가연이도 많이 힘이 들 텐데 엄마가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 주며 괜찮다고 토닥토닥해 준 것 같아. 때론 갑자기 찾아오는 공허함과 같이 듣던 음악이 들려오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와. 하지만 괜찮아. 가연이도 하늘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걸 알기에 엄마도 여기서 힘을 내어 열심히 지낼게. 그리고 요즘 아빠랑 언니는 별 사진을 찍으려고 노력하고 있어. 날씨가 안 좋아 몇 장 못 찍었어. 또 오빠랑 성현이는 어리광이 늘어 주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해. 말도 엄청 많이 하고~~ 가연이가 봐도 웃기지. 그리고 물고기들도 잘 지내고 있어. 새로운 소식도 있어. 거북이 두 마리가 입양을 올 것 같아. 집이 다시 시끌벅적해지고 있어. 다들 힘을 내어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우린 잘 지내고 있으니까 가연이도 하고 싶은 것 많이 많이 하면서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서로에게 파이팅 하자. 가연아~~ 많이 많이 보고 싶고 사랑해. 3. 김지아 사랑하는 지아에게... 지아야, 엄마는 저 단 한 줄을 몇 번을 쓰고 지우고를 반복했는지 몰라. 우리 지아. 봄꽃 흩날리는 날 태어나서, 너무 꽃같이 예뻐서 엄마가 늘 꽃지아라고 불렀는데. 다시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오고 있어. 너를 만난 봄, 너와 헤어진 봄, 꽃지아가 없는 봄이... 어느덧 우리 지아가 천국에 간지도 벌써 1년, 천국에서 맞는 두 번째 생일이 다가오네. 그래서인지 요즘 부쩍 네가 너무 보고 싶어. 정말 딱 한 번만 안아주고, 안아서 토닥토닥해주고 싶어. 엄마가 요즘 지아한테 매일 꿈에 좀 나와달라고 귀찮게 했더니... 정말 1년 만에 엄마 꿈에 나와주긴 했는데 여전히.. 엄마는 석션을 하고 있었고 지아는 이제 그만하라며 엄마 어깨를 밀어내더라. 이모들한테 얘기 했더니 지아가 그동안 자기 케어하느라 고생했다고 그만하라고 하는 거 같다고... 그 말에 또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그런데 며칠 후 언니의 꿈 이야기를 듣고 엄마는 마음이 따듯해지고 큰 위로를 받았어. 지아랑 천국에서 만나서 놀았다고, 지아는 양갈래 머리를 하고 있었고 아가들은 쪽쪽이를 물고, 기어다니고, 지아 친구들도 많았고, 언니처럼 책 읽는 언니오빠도 많았대. 어른들도 많았는데 다들 웃고 있어서 웃음소리만 듣고 목소리는 못 들었대. 외할버지는 천국이 지구보다 넓어서 못 찾았고, 아리는 무지개다리 건너에 있어서 만나지 못 했다고^^ 언니가 술래였는데 지아를 잡으려고 하는 순간 잠에서 깼다고, 너무 재미있고 행복한 꿈이었다고 하더라. 언니가 마치 본 듯이 너무너무 자세히 말해줘서 엄마 눈에 막 그려지더라~ 다음에는 엄마도 같이 술래잡기 하자! 우리 지아는 아주아주 건강하게 태어나서 잘 먹고, 잘 자고, 아주 너무 순하고, 착한 사랑둥이 둘째였어. 뒤집기도 늦고, 몸에 힘도 빠지면서.. 병원을 찾았고 돌잔치 앞두고 크라베병 진단을 받았어. 기대수명이 고작 1-2년이라고 했지만, 우리 지아는 아주 용감하게 싸워가며 4년이 넘도록 함께 있어줘서 너무 고마워. 너의 느림을 알고부터 진단을 받기까지.. 처음에는 진단명만 나오면 다 치료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세상에 참 희귀한 병도, 병명조차 모르는 병도, 치료법이 없는 병도 그렇게 많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 정말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에 가슴 치며 얼마나 울었는지... 그러던 중 엄마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우리 지아를 참 사랑하시는구나~ 그래서 이렇게 행복한 우리 집에 왔구나. 아프지만 행복하게 웃으며 지낼 수 있게 해주셨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어. 그래서 우리 지아 지켜줘야지, 아프지 않게, 몸은 아파도 항상 행복하게 해줘야지 하며 힘을 낼 수 있었어. 하지만, 엄마는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어. 하나님은 이 엄마를 아주 많이 사랑하시는구나~ 그래서 이렇게 천사 같은, 꽃 같은 착한 우리 지아의 엄마가 되는 행복을 주셨구나. 참 자격 없는 엄마한테 와서 우리 지아~ 엄마를 엄마 만드느라고 고생했어. 지아 엄마라 행복했어. 지아 아니었으면 몰랐을 세상을 알았고 지아를 통해 세상을 넓게, 아름답게 볼 수 있게 되었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상에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거, 모든 것이 감사 거리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어. 그래서 엄마는 지아가 떠난 후에도 웃으며,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어. 지아야 너무너무 고맙고 사랑해. 봄꽃처럼 우리에게 와서 아름답게 빛났던 지아야. 엄마, 아빠, 언니에게 와줘서 고마워. 언제나 늘 사랑해~~~♡ 34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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